독서 기록

독서로 얕은 지식 쌓기 -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제주 4.3 사건에 관하여 (리뷰 아님, 완독 아님 주의)

웃만이:) 2022. 6. 4.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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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삶의 목적은 선명하지만 에너지를 쏟아 달려오던 길에서 이탈해 무얼 해야 할지 아직도 정하지 못한 나다다행히 그런 아픔을 이해하려 하고 안쓰러워하며 다독여 응원해주는 남편이 있어 감사하다이렇게 깊은 사람이었구나덕분에 나는 이렇게 많다면 많은 나이에도 채근하는 사람 없이서두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시도해보고 도전해 있으니 받았다.

 

해보고 싶은 하나가 책을 써보는 것이다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쓴다는 소리를 들어왔는데아마도 어린 시절 어마어마했던 독서력으로 여태 버틴 같다성인이 돼서는 다독하지 못했다불건전할 것은 없었으나도파민의 노예처럼 자극적인 것들에 얼마 있지도 않았던 여가시간을 내어 적이 많았다삶이 여유가 없었다며 여타 변명할 것들이 많지만표면적이고 결론적인 모습은 그랬다.

 

이제 아웃풋이 점점 단조로워지는 것을 보며 인풋이 부족함을 느낀다고단한 삶이 모습의 어느 부분들을 나쁜 습관으로 바꿔놨다면 내가 다시 바꾸면 된다그렇게 바꿀 있도록 이곳에 보내주셨고 마음이 잠잠해졌고감사할 것들이 넘친다남편과 200살까지 살기로 했으니(농담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미국이니초조해하지 말고 하루하루에 충실히 조금씩 달려보자.

 

본론

 

독서에 좀처럼 가속도가 붙지 않는다다시 전처럼 손에서 책을 모를 정도로 몰입해서 읽고 싶은데 된다주변에 신경 일도 많고 돌아갈 것들도 많다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이 옮겨 쓰기필사라고 하기엔 뭐한 것이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타이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제일 먼저 택한 책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조금 읽어보니, 아이쿠. 너무 어두운 책을 골랐다나는 졸업하고서도 여전히 학교 전자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는데그곳에서 베스트도서 상위에 링크돼 있길래 아무 생각 없이 골라 읽었다 책은 '제주 4.3 사건' 배경으로 한다그리고 책의 주인공도 작가이며 4.3사건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정보를 모으고 책을 내는 과정에서 오래도록 사건이 시각화된 악몽을 꾸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나는 겨우 하루 읽었는데도 이와 관련된 악몽을 꿨다. 허허허허허허. 덕분에 필사는 하루 만에 포기다오래오래 조금씩 읽으면 내가 괴롭겠다더군다나 문체가 내가 바라던 문체도 아니었거니와(간결한 문체를 좋아한다.), 종종 발견되는 오타와 띄어쓰기가 거슬리고(어느 책이나 그렇다 글도 그럴 테지요즘 교정 작업을 가끔 하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같다.), 아무래도 수필이 좋다그렇지만 소설 자체는 매우 흥미로우니 끝까지 읽기로 한다.

 

학창 시절 내가 역사 과목을 좋아하진 않았어도 시험은 잘 봐야 하니 공부는 열심히 했었는데, 그때는 이 사건을 깊이 다루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찾아보니 정말 그랬다. 주목받은 지 몇 년 안 된 사건이었다. 처음 역사 교육과정이 마련된 이래 1987년까지는 ‘북한 공산당의 폭동’으로 소개됐고, 97년에서야 비로소 민간인 희생을 언급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까지 모든 교과서가 이 사건을 ‘폭동’으로 정의했다고 한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70269)

 

그럼 과연 제주 4.3 사건은 무엇인가. 이것저것 찾아보고 읽어보고 들여다보니, <작별하지 않는다>의 주인공이 괴로움에 잠 못 이룰 만하다. 참으로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다.

 

1947년 3월 1일,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 얼마 안 된 그때 제주도에서도 삼일절 기념대회가 있었다. 대회 후 미군정의 실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두시위를 했는데, 이때 이를 제지하려던 경찰들 중 한 사람이 타고 있던 말의 말발굽에 어떤 어린아이가 채이게 된다. 그 경찰은 이를 모르고 지나가게 되는데, 이에 분노한 군중들이 경찰에게 분노를 표출하며 돌을 던졌다. 이 당시 경찰들은 일제 강점기 경찰이었던 사람들이 그대로 경찰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해방은 되었으나 일제강점기와 다를 바 없는 고문도 계속 자행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안 그래도 경찰에 대한 반감이 많았던 군중들은 경찰이 아이를 치고 그냥 가버리니 화가 날 수밖에. 어찌 됐든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경찰은 황급히 경찰서로 도망가고 군중들은 경찰서까지 따라가며 계속 분노를 표출하고 거리는 난장판이 된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경찰서 내의 경찰들은 군중이 경찰에 대항해 폭동을 일으키는 줄 알고 군중을 향해 총을 쐈다. 이 일로 도민 6명이 죽고 6명이 중상을 입게 되는데 이들은 정작 시위와 관련 없는 일반 군중들이었다. 그런데 미군정 당국이나 경찰은 이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군중들에 의해 경찰서가 공격받을 뻔했기에 이 발포는 정당방위였다고 발표해버린다. 게다가 그 책임을 군중에게 물어 시위 간부들과 학생들을 연행하기까지 한다. 이로써 민심은 더더욱 들끓게 된다.

 

(당시 제주도는 사상 최악의 흉년이었고 미군정도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폭정으로 일관했기에 도민들은 어느 곳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었을 것 같다. 해방 직후 좌익 세력인 남조선로동당(이하 남로당), 군정 경찰, 국군, 미군정이 충돌하고 그 후 우익 세력인 서북청년단까지 끼어들면서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혼돈의 시기였다. 그리고 제주도가 이념적으로는 이상적이고 그럴싸한 공산주의를 실제로 많이 지지했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이들이 정말 잘 알아서가 아니라, 잘 먹고 잘 살게 해준다고 하는 남로당의 선동에 넘어간 듯 하다. 제주도는 당시 오래도록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이었고 민주주의라는 것은 너무 낯설었으니.)

 

아무튼,  일이 계기가 되어 제주 도민들은   3월에 제주 직장인 95% 해당하는 사람들이 총파업을 강행하고 파업이 남로당의 선동에 의한 것이며 제주도민의 상당수가 좌익이라고 판단 내려버린 미군정은 도민 전체에 대해 무차별적 탄압을 강행한다 탄압으로 파업은 3 말에 잠잠해졌지만  후로도 탄압은 계속됐고제주도 교도소는  이상 수용할 곳이 없을 정도로 끌려간 도민들로 가득 찼었다고 한다. 탄압에는 폭력과 고문과 살인이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제주 도민은 미국이고 우익이고 싫었을 같다. 나무위키나 여러 영상과 자료들을 보면, 제주 도민은 단지 뿌리 깊은 가난의 역사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민심을 힘입어 1948년 4 3 새벽 진짜 좌익인 남로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하기 위해 제주 경찰서 12곳을 공격하고, 경찰들과 우익 단체들의 집을 습격하는 반란을 일으킨다. 일이 나중에 제주 4.3 사건이라 불리게 이때 습격당한 사람들은 현장에서 죽게 되고, 일로 미군정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반공 세력을 제주도에 더 많이 파견하고 제주 해안을 봉쇄해 버린다.

 

그해 5 10일은 대한미국 역사상 민주주의에 기반한 총선이 치러질 예정이었는데, 이를 반대하는 좌익 세력에 의해 선거관리사무소가 습격을 당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남한 단독으로 선거는 치러지고, 제주도민들의 자의에 의해서인지 사무소가 습격을 당해서인지 없으나 제주도는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투표가 무효가 되는 남한 유일의 지역이 된다. 이 일로 우익과 미군정의 제주 도민에 대한 오해는 더더욱 깊어져 간다.

 

그해 8 15, 남한은 민주주의 공화국인 대한민국을 수립하게 되고, 이승만 대통령은 제주도의 좌익 세력을 척결해야 된다고 판단, 11 17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한라산 중간 산간 지대를 지나는 자는 반정 세력으로 간주,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한다.


1948
 11, 정말 포고문대로 정부는 중산간마을을 강경진압하기 시작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설마 죽이기야 할까 생각한 많은 도민들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때 제주 인구의 1/103만 명 정도의 도민이 죽었다고 한다. 마을들도 많이 불타 없어져, 지금도 여전히 이름만 있고 존재가 없는 마을도 있다고 한다.  

 

사건은 여순사건과 함께 대한민국 1공화국 시기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히며, 진짜 반란의 핵심이었던 남로당, 반란을 진압한답시고 무고한 민간인들을 죽인 극우 단체, 이를 방조하고 조장한 당시 정권과, 진영논리로 사태를 균형 있게 보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킨 미군정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우리나라의 비극적 역사이다.

 

결론

독서하며 모르는 것들은 찾아가며 인풋을 만들어보자 해서 시작한 것인데, 처음부터 너무 큰 사건을 배웠다. 나무위키와 여러 관련 기사들, 역사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공부했는데, 대부분의 역사가 그러하듯 각자의 정치 성향과 역사 인식에 따라 이 사건에 대한 견해는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당시 가난에 힘겨워하던 제주도 사람들을 이해해주지도 않았고, 새로운 이념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을 차근히 가르쳐 줄 여유도 없었던 당시 한반도의 안타까운 상황 속에, 뜻에 맞지 않으니 무력으로 진압하고 죽이기를 선택한 그때의 여러 정치 세력들로 제주도 사람들이 슬픈 희생양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