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미국의 삶이 익숙하다.
영어는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미국인들의 낯설던 문화와 삶의 모습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그런가 보다 한지 오래. 요리는 유튜브가 있기에 못할 것이 없다. 주변 지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류는 진짜라서, 아이들의 학교에서 또는 회사에서 김치나 김밥은 왜 안 싸 오는지, 또는 어떻게 만드는지 묻는 일들이 종종 있다고 한다. (실제로 싸가면 냄새 때문에 힘들어할 거면서ㅎㅎ)
그렇지만 포케를 파는 가게에도 김치 토핑과 고추장 드레싱이 있고, 어느 햄버거 가게에는 김치 버거도 존재한다. 가격은 비싸지만 마트에서 김밥 구하기도 어렵지 않고, 라면과 만두, 김은 진작부터 많았다. 지난 주말에 간 파파이스에는 한국 양념치킨을 모방한듯한 스파이시 치킨 메뉴가 있었고 맛도 비슷했다. 얼마 전 병원에서는 자기가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며 내 영어 발음보다 나은 한국어 발음으로 나한테 인사하는 의사도 있었다.
자연이 아주아주 가까운 삶도 감사한 일이다. 눈만 돌리면 숲이 있다. 동물을 보는 건 일도 아니다. 동물을 못 보는 날이면 '오늘은 왜 못 봤지?' 한다. 내가 사는 곳이 미국의 수도권인데도. 조급할 것 없는, 시간에 관대한 삶도 처음엔 답답했지만 이제는 편안하게 느껴지고, 가족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지원하는 사회 분위기는 정말 배울만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리운 한국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운 사람들, 고맙고 보고 싶은 사람들. 어딜 가나 한국말로 마음껏 떠들 수 있고, 어딜 가나 맛있는 음식이 있고, 어딜 가나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들이 있으며, 편리한 교통과 빠른 행정 처리, 나와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이 눈을 스쳐 지나가는 곳. 눈길만 닿아도 추억이 살아나는 수많은 풍경이 있는 곳. 지하철을 타고 지나는 한강 다리는 건널 때마다 예뻤다. 못 간지 벌써 3년.
우리에겐 아직 자녀가 없지만, 이민자의 자녀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 같다. 학위 때문에 와서 자리를 잡은 우리도 점점 한국에서 이방인이 되는 느낌인 걸. 세계 각국의 기술 발전을 빠르게 흡수해 일상에 적용하는 한국은 아마도 갈 때마다 놀라울 만큼 달라져 있을 테니. 이곳에선 각자의 속도에 맞게 살아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 없지만, 한국은 모두가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하고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회라서 다시 또 낯설겠지. 미국에 온 지 2년 만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입국심사 서류를 미리 손에 안 들고 와 꺼내는 시간이 걸렸다며 짜증 내던 입국심사관이 생각난다. 그때 한참 코로나로 일도 많고 예민하던 시기였으니 이해한다.
유학생으로 혹은 일 때문에 성인이 되어 미국에 자리 잡은, 미혼 혹은 기혼의 많은 젊은 사람들이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봐 왔다. 그런 사람들의 삶의 특성상 직장을 잡고 집을 사기 전까지는, 아이를 낳아 아이의 학업을 위해 이제는 그만 옮겨야겠다 하기 전까지는 이 넓은 땅에서 동부 중부 서부 할 것 없이 주를 옮겨 이사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제 좀 마음 열고 알만하다 싶으면 헤어지기 일쑤. 그러니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면, 마음 다치는 것을 미연에 예방하고자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지역 사회에 이미 발 붙이신 어른분들 중에는 마음 줬더니 헤어지는 젊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이제는 정 안 붙일 거라고 말씀하시던 분도 있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더 힘들다며.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 그렇지 뭐 할 수 있지만, 한국과 다른 점은 한국엔 이미 마음 나눈 가족과 학창 시절 친구들이 같은 땅 같은 시차에 있다는 것. 그리고 국토가 하루 생활권이며 교통이 편리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것. 이곳엔 그런 사람들이 없고 땅도 너무 넓다. 그래서 마음 한 구석을 비워둔 채 지내는 많은 커플들을 봤다. 우리 부부에게 그런 이야기를 나눠주는 것이 감사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우리가 선택한 삶이고, 삶의 많은 기쁘고 감사한 일들이 그 감정을 덮겠지만, 마음 한편이 허전한 채로 그 시절을 보낸다.
이러한 시기는 한 때고 다 지나가겠지. 그래도, 미국의 대자연이 아무리 아름답고 멋져도, 추억이 살아나는 소박한 풍경들이 그립고 귀하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결혼 이전 시절을 떠올릴 풍경은 없다. 한국에서도 그런 마음 붙일 사람도 따스한 풍경도 없는 사람들이 있겠으나, 나는 백 프로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니까.
우리에게는 그런 마음 열 사람들이 일찍 생겼고, 마음 열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기에 참 감사한 일이다. 남편이 교회 청년부 활동을 오래 해 와서도 그렇고, 내가 질병이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내 몸이 많이 약한 시기가 있었던 것, 내가 아픈 것이 감사이기도 하다.
우리 가정, 계속 사랑을 흘려보내는 삶 살기를.
오늘도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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