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기 전, 한국에서 꼭 하고 와야 될 것들과 챙겨 와야 할 것들을 찾아보곤 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사랑니 뽑기'였다. 사랑니뿐만 아니라 치과 치료 전반적인 것은 다 받고 가는 게 좋다는 조언이 많았다. 그러나 어디 일이 늘 계획대로만 되던가. 남편의 사랑니는 전부 매복 상태였고, 굳이 이걸 수술까지 해가며 뽑고 가야 하나 하는 생각에 그냥 둔 채로 미국에 넘어왔더랬다.
그런데 작년 가을부터 이 사랑니들이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이 조금씩 잇몸을 비집고 나오면서 옆에 있는 어금니를 미는 바람에 종종 붓기도 하고, 음식물도 끼고, 머리까지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부턴 그 아픈 횟수가 훨씬 잦아졌다. 그런데 때마침 이번 학기부터 남편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치과 보험을 제공한단다. 다행쓰!!!
한국에서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사랑니 뽑기가 미국에서는 꽤나 큰 일인 것이, 일단 겁나 비싸다. 여기서는 사랑니를 뽑을 때 대부분 전신마취를 한다고 들었고, 보호자 동의도 필요하다. 허허. 그래서 사랑니를 뽑을 때 보호자도 같이 가야 된다. (치과의사인 한국 친구가 무슨 소아치과냐며 웃었으나, 이곳에서는 이런 일이 지극히 일상이다.)
아무튼. 남편 학교에 학생을 위한 치과보험이 생김과 동시에 학교 내에 치과가 들어섰는데, 예약을 잡아 그 치과에 가보니 남편의 케이스는 자기들이 다룰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 전문 병원으로 연결해주겠다고 했단다. 그래서 임플란트와 사랑니를 전문으로 하는 로컬 치과로 예약을 잡아줬고, 우리는 예약 한 달 만에 드디어!!! 사랑니를 뽑으러 갈 수 있었다.
예약은 2시 반이었는데, 우리는 2시에 도착했으나 진료실에는 2시 40분에 들어갔다. 환자가 많기도 했지만, 이 지역 병원들은 대체로 예약 시간을 잘 안 지켜주는 것 같다. 그래도 투덜대는 사람 하나 없다. (다른 지역은 아직 안 살아봤으니, 대도시는 또 다를지도.)
미국 치과는 처음이라, 이곳이 임플란트 전문 병원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미국 치과가 대부분 이런 구조인지 알 수 없지만, 환자 한 명 당 진료실 하나를 쓴다. 한국 치과에 비해 구조가 굉장히 단순하고, 환자의 구강을 자세히 보기 위해 비춰주는 조명도 의자와 일체형으로 달려있지 않고 의사가 헤드랜턴을 쓰고 다녔고, 캐비닛처럼 보이던 곳 문을 여니 그 안에 각종 치과 치료용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물이 나오는 개수대도 의자에 달려 있지 않고 방 한 구석에 세면대가 따로 있었다.
그다음, 남편의 사랑니가 어떻게 위치해 있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 엑스레이를 찍어 확인했는데, 보다시피 종이로 뽑아왔다. 한국에서처럼 작은 스크린에 띄워 보여주거나 필름 자체로 보여주지 않는다. 아! 데스크에서 이 비용은 진료실 들어오기 전 미리 결제했다. 상담 비용과 엑스레이 비용 포함해서 280달러!!!!! 우와 미국!!
이렇게 병원비가 우리나라와 단위부터 다르다 보니, 역시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비용. 우리 보험은 매년 8월 갱신되는데, 어떻게 뽑아야 더 많은 보험 혜택을 받으며 잘 뽑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보험 적용 내역을 뽑아갔고, 상담 후 비교해보니 두 번에 걸쳐 나눠 뽑으면 다음 뽑을 때 다시 지불해야 하는 마취와 엑스레이 비용의 보험 적용 범위가 크지 않다. 그러니 이번에 다 뽑는 게 더 나은 것.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사랑니를 두 개씩 나눠 뽑게 된다면, 왼쪽이면 왼쪽, 오른쪽이면 오른쪽, 위아래로 2개 짝지어 뽑는 것을 권장한다고 했다.)
한 번에 네 개를 다 뽑는다니!!!! 한국에서는 이런 경우 거의 못 봤는데, 여기는 이런 비용 문제 때문인가? 한국사람이든 미국 사람이든 한번 뽑을 때 다 뽑았다는 분이 이곳 지인들 중에 상당히 많았다.
그렇다면 계속 얘기한 비용은 과연 얼마일 것인가?!!!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부분마취로 4개 다 뽑을 때, 아까 엑스레이와 상담비용 포함 2,380달러!!!
만약 치과에서 권하는 대로 전신마취를 한다면? 3,380달러!!!!!!!!
(보험 적용 전 금액. 우리는 700~800달러 정도 돌려받을 것 같다.)
으하하하하하.
전신마취는 필수는 아니라고 했다. 뽑을 때 아픔이 없고, 그 이를 잡아 빼는 느낌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목적. 마취가 풀린 후에는 부분마취와 다를 바 없이 아프다. 전신마취 후에는 24시간 동안 법적으로 운전이 금지돼 있다. 그래서 내 용감하고 자랑스러운 남편은 부분마취로 뽑기로 결정했다. 비록 전신마취를 꼭 해야 하는 줄 알고 우버를 타고 오긴 했으나.
뽑는 건 금방 뽑았다. 30분 정도 걸린 듯. 의사분이 힘이 좋으셨나 보다. 양 볼이 거즈를 물어 빵빵해진 남편이 진료실에서 나왔다. 나는 의사와 보조하시는 분들이 다 들어올 때까지 계속 같이 있었는데, 하마터면 뽑는 것도 볼 뻔했다. 남아있어도 된다 했으나 만약 그랬다면 아마 속으로는 다들 '이 동양 여자 진짜 특이하다. 왜 이 뽑는 걸 보려고 하지?' 생각했을 것이다.
전신마취로 네 개를 뽑는다고 처음 들었을 때는 꽤나 당황했었는데, 병원 시설이 비록 첨단은 아니었을지라도 경력 있는 의사분이 잘 뽑아주셔서, 별 탈 없어서 정말 감사했다. 남편은 뽑은 당일 저녁부터 그 후 이틀까지는 죽을 갈아먹었고, 아직도 죽을 먹지만 갈아먹진 않는다. (오늘은 수술 후 3일째이다.) 첫날은 비교적 덜 아프고, 이틀 후가 제일 많이 아프다고 했다. 진통제는 타이레놀과 이부프로펜 같이 6시간마다 먹었고, 덕분에 속이 메슥거려서 수술 이틀 뒤엔 토하기도 했다. 이제야 딱지가 좀 생겼단다.
그 밖의 이야기들
-여기 치과 의사들, 그러니까 처음 교내 치과에 갔을 때, 그리고 로컬 치과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남편 금니를 볼 때마다 "beautiful!!!"이라고 외친다. 한 번만 말하는 게 아니고 진심으로 여러 번. 우린 이렇게 할 수 없다면서. 따라가서 직접 들으니 더 흥미로운 반응이었다.
-우버를 미국 오고 나서 처음 타봤다. 나는 요즘 눈이 불편해 차를 운전할 수 없어서 차를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우버 기사분들은 두 분밖에 안 만나봤으나 발음이 조금 남다르다. 그리고, 치과의사 선생님도 그랬고, 우버 기사분도 그랬고 남편이 부분마취로 사랑니 네 개 다 한번에 뽑았다니 아주 용감하다고 난리였다. 우버 기사 아저씨가 "You're a big man!" 이에 남편이 "I'm a warrior!!" ㅋㅋㅋㅋ 무용담이 생기셨다 아주ㅋㅋ 고생 많았다 내 남편! 우리 가장 용감해!!♡
-전신마취를 'general anesthesia'라고 하더라. 그치만 'sedation'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썼다. 진정제를 투여해 수면마취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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