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일상

베타를 보내며

웃만이:) 2022. 3. 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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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의 마지막 날

 

이 글은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는 글이 될 수도 있겠다. 그래도 2년 넘게 마음의 한켠을 내어 줬던 베타를 위해 글 하나 정도는 남겨두고 싶었다. 

 

나는 매일 먹는 약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피부가 많이 건조한 편이다. 1년 내내 바디오일을 달고 살고, 얼굴에도 매일 오일을 바른다. 우리가 물고기를 키우기로 한건 이런 내 건조함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이처럼 집에 어항이 있으면 습도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 하나, 남편이 털 알러지가 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키우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 그렇게 우리는 물고기를 한두 마리씩 데려오기 시작했고, 구피와 베타, 지브라피쉬, 테트라피쉬가 우리 집에 함께 살게 됐다. 

 

그 중 베타는 우리가 물생활이 뭔지 겨우 조금 알아갈 무렵 데려온, 꽤 오래된 친구였다. 일단 겉모습이 예쁘고 화려했고, 지인 중 먼저 키우시던 분이 베타는 여과기나 산소공급장치도 필요 없이 쉽게 키울 수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처음엔 정말 키우기 쉬운 것처럼 보였던 베타는 알고 보니 아무것도 필요 없다던 그 조건이 최소한의 생존 조건이었다. 우리의 무지로 베타는 양쪽 배 지느러미의 빨간 포인트를 일찍이 잃어버렸다. 수질이 좋지 않아 끝이 녹아버린 것이다. 부랴부랴 치료 방법을 찾아보고 일주일에 2-3회 환수하는 것으로 겨우 지느러미 녹음을 멈추게 할 수 있었다. 이때 우리는 너무 놀라 산소가 공급되는 작은 어항으로 잠시 바꿔줬는데, 이 예민한 녀석이 이 산소 공급기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몸통을 벽에 부딪치는 행동을 보인 것. 공간이 넓었다면 덜 문제가 됐을 텐데, 넓은 수조에 베타 한 마리만 키우기에는 우리가 여유가 없었다. 베타 아니어도 넓은 수조가 이미 두 개, 작은 수조가 한 개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베타 지느러미가 어느 정도 괜찮아진 때에 다시 베타만을 위한 아무 장치도 없는 넓은 통으로 다시 옮겨줬었다. (베타는 일반적으로 한 어항에 한 마리씩만 키운다. 다른 베타와 함께 있으면 서로가 죽을 때까지 공격한다고 한다. 심지어 서로 다른 성별일지라도. 그래서 짝짓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수질이 안 좋았을 때 입술에도 문제가 생긴 적이 있는데, 그때는 생전 처음 물고기의 입술을 손으로 닦았더랬다. 약을 넣어주고 기다려도 차도가 없는 것 같길래 이리저리 찾아보니 입술을 직접 소독해주면 된다길래, 남편과 나는 물을 흠뻑 적신 타월에 베타를 꺼내 조심스럽고 잽싸게 입술을 소독해 줬었다. 입술 소독 때문인지, 그 뒤 걱정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열심히 환수하며 약을 넣어준 덕분인지 베타는 기특하게 또 그 고비를 넘기고 깨끗이 나았다.  

 

한 번은 변비에 걸린 적도 있었다. 베타가 잘 먹고 큼지막한 똥을 매일 싸 둘 때면 '아, 이 녀석 건강하구나!' 하며 뿌듯해하곤 했는데, 그때는 이틀 이상 변을 보질 못했다. 또 열심히 찾아보니, 아가미를 활짝 펼치는 공격 자세인 플레어링을 시켜주면 배변을 도울 수 있다길래, 스트레스 받지 말길 바라며 하루 잠깐씩 플레어링을 시켜주기도 했다. 효과는 정말 직방이었고, 그렇게 며칠을 신경 써주니 변비마저 이겨냈더랬다.

 

베타가 특별했던 이유는 다른 물고기와 달리 약간의 교감이 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베타는 거품집이라는 걸 만드는데, 환경이 맘에 들거나 짝짓기를 하고 싶을 때 거품집을 만든다고 알고 있다. 처음 거품집이 생겼을 때는 그게 뭔지 모르고 수질이 안 좋아졌나? 하고 깜짝 놀라 바로 제거해 줬었다. (어차피 또 만들 거품집, 제거해 주는 것이 수질에 좋다고는 한다.) 그런데 베타가 기분이 좋아서 만드는 거라는 걸 알고 나니 우리까지 기분이 좋아지고, 거품집이 없는 날이면 아쉽기까지 했다. 한때는 거품집을 매일 만들길래 '암컷 베타를 데려와야 하나' 하고 알아봤었다. 짝짓기가 너무 하고 싶은가 보다 하는 생각에. 그러나 앞서 말했듯 베타는 공격성이 강해 짝짓기 난이도가 굉장히 높다는 걸 알고 이내 포기했다.

 

베타는 수초와 같은 장애물에 자기 몸을 얹어 놓거나 구석에 들어가는 걸 좋아했고, 그렇다면 몸이 들어가는 작은 공간을 좋아하겠다 싶어 작은 컵을 하나 넣어줬더니 정말 자주 들어가서 쉬고 잠을 자기도 했다. 베타가 잘 때는 미동도 안 하는 것이 너무 귀엽기도 하고, 내 인기척에 혹시나 깰까봐, 나는 아침에 일어나 불을 켤 때면 베타가 있는 곳 불은 켜지도 않았고, 발걸음도 살금거리며 다녔다. 

 

우리는 심지어. 베타송까지 만들었었다. 남편은 나와 관련된 것들로 노래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데, 내가 베타를 너무 귀여워하니 베타가 귀엽다는 내용의 노래를 만들어 베타 앞에서 종종 불렀다. 

 

그런 베타가 이제 없다. 올해 들어 부쩍 자주 컵에 들어가 쉬었고, 잠을 많이 자길래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꼬리에 희끗한 반점이 생겨서 노화인가 보다 했었다. 눈물 많은 나는, 물고기의 죽음을 마주하고 울었다. 아마도 오랜 추억이 생각나서 그랬을게다. 그래도 그날 하루만 울었던 건, 베타와 촉각적 교감이 없어 그러하고, 또 살만큼은 살다 간 것 같아서(최장수 베타가 되길 바랐으나, 대략 3년 정도 산 것 같다.), 자기를 위한 노래까지 가지고 있던 물고기가 어디 흔한가 하며, 재밌는 추억이 많아 감사하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다시 베타를 사더라도 같은 색의 베타는 사지 않으려 한다. 베타를 더욱 특별하게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무슨 물고기 한 마리 죽었다고 이리 장황한 글을 쓰나 하는 이 이상하고 낯설지만 꼭 하고 싶은 이 이야기는 이제 마무리하자. 식물이든 물고기든 동물이든, 생명을 키우며 배우는 것이 많은 것에 감사하며.  

 

플레어링 하는 베타. 이때도 꼬리 상태는 좋지 않다.